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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가담 5·18 진압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 프로필, 김문수 대선 캠프 선대위 고문 인선 취소

by 정치, 사회, 방송, 연예 실시간 이슈 포스팅 2025.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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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용 프로필과 김문수 선대위 위촉 논란, 그리고 5.18 관련 이슈의 전말

 

정호용, 그의 삶과 군 경력의 궤적

 

정호용은 1932년 9월 10일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25 전쟁 중 육군에 입대해 참전한 뒤 육군사관학교에 입교, 1955년 11기로 졸업하며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전두환, 노태우와 같은 육사 11기 동기이자, 이들과 함께 1964년 사적 모임인 '하나회' 조직에 참여하며 신군부의 핵심 인물로 성장했다. 이후 1977년 육군특수전사령부 참모장, 1978년 제50보병사단 사단장, 12.12 군사반란 이후 특전사령관에 임명되며 군 내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다. 정호용은 제25대 국방부 장관, 제45대 내무부 장관, 제25대 육군 참모총장, 13·14대 국회의원을 역임하며 군과 정계를 넘나드는 행보를 보였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에서의 역할

 

정호용의 이름이 역사에 굵직하게 남은 이유는 1979년 12.12 군사반란과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작전에서의 역할 때문이다. 12.12 당시 그는 대구 50사단장이었으나, 쿠데타 이후 특전사령관으로 승진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신군부의 정권 장악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특히 5월 27일 도청특공작전(상무충정작전)을 직접 지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행적은 훗날 1997년 대법원에서 12.12와 5.18 관련 내란 및 군사반란 혐의로 징역 7년형이 확정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정치권에서의 재기와 과거사 청산

 

정호용은 군 경력을 마친 후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며 정치권에 진출했다. 이후 민주자유당에 입당해 김영삼 정부 대통령 선거운동을 도왔으나, 김영삼 정부의 과거사 청산 작업에 따라 1996년 12.12와 5.18 관련 혐의로 다시 구속되는 등 파란만장한 정치 인생을 겪었다

 

김문수 선대위 상임고문 위촉 논란의 전말

 

2025년 5월,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는 김문수 대통령 후보자를 자문할 상임고문으로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을 위촉했다. 하지만 이 인선 소식이 알려지자 곧바로 거센 논란이 일었다. 5.18 민주화운동 진압 작전을 지휘한 인물을 선거대책위 고문으로 영입한 것은 민주화운동 희생자와 유가족, 그리고 광주 시민을 비롯한 국민 정서에 반하는 결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김문수 후보가 불과 며칠 전 한 방송 인터뷰에서 "계엄으로 인한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들께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한 바 있어, 정호용의 영입은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결국 국민의힘은 같은 날 밤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의 상임고문 위촉을 취소했다"고 공식 발표하며 논란을 진화했다

정호용 위촉 논란이 갖는 의미

 

이번 논란은 단순히 한 인물의 인선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가 여전히 5.18과 같은 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과거사 청산을 어디까지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정호용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특전사령관으로서 신군부 정권 장악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로,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이미 법적으로도 유죄가 확정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 그를 중용하려는 시도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적 흐름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정치권 내 반응과 파장

 

정호용 위촉 논란은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일부 의원들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싸워도 모자란 시간에 아직도 윤석열 타령을 하고 있다"며 당의 혼란을 비판했고, 친한동훈계 박정하 의원은 "이 거짓말은 진짜냐. (적절한 인사 영입인지) 그런 거 묻지 말고 똘똘 뭉쳐라?"라는 비판적 입장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1. 이는 단순한 인선 논란을 넘어, 당내 세력 간 갈등과 리더십 문제로까지 확산되는 양상을 보였다.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현재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운 결정적 사건이다. 이 운동은 수많은 시민들이 군부의 무력 진압에 맞서 자유와 정의를 위해 희생한 역사로 기록되어 있다. 정호용과 같은 군부 인사들이 당시 작전을 지휘하며 신군부 정권을 세운 사실은 이후 긴 시간 동안 사회적 논쟁과 법적 심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오늘날 5.18은 단순한 지역적 사건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호용과 같은 인물의 정치권 재등장은 과거사 청산의 한계와 역사적 책임의 무게를 다시금 상기시키고 있다.

 

정호용 논란이 남긴 과제

 

정호용의 선대위 위촉과 취소 소동은 우리 사회가 과거사 인식과 청산, 그리고 민주주의 가치 실현에 있어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치권은 앞으로도 인선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와 역사적 책임을 더욱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또한, 5.18과 같은 현대사의 교훈을 잊지 않고,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지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호용의 군 경력과 정치적 행보, 그리고 최근 김문수 선대위 상임고문 위촉 논란은 우리 사회가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5.18 민주화운동의 아픔과 교훈을 기억하며, 올바른 역사 인식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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